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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미국과 전시작전권
작가, 정치평론가
  2013-10-21 15:00:31 / 김갑수 기자


미국은 한국을 도와주는 우방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의외로 많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이런 맹목적인 여론을 배경으로 야기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유익한 나라인가? 결국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역사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유일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일병합의 교사범 또는 배후범

조선과 미국의 관계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시작됐다. 그리고 1904년 유명한 ‘카스라·태프트 밀약’이 있었다. 이것은 러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일 간에 수수된 비밀각서였다. 20년 후에나 드러난 이 각서는 표면상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고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면의 사정은 이와 크게 다른 것이었다. 이 음습한 비밀각서는 이미 러일전쟁의 전비 60% 이상을 낸 미국이 일본에 조선 침략을 지시한 문서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을사늑약이나 한일병합에서 미국은 교사범 또는 배후범이었다.

이후 미국은 운산금광 개발권 등 여러 가지 실속 있는 이권을 차지함으로써 1925년까지 제국주의 국가 중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이권을 챙겼다. 그럼에도 당시 조선인들의 대미 인식이 좋았던 것은 <독립신문>등의 언론이 벌인 여론 공작 때문이었다. <독립신문>을 만든 서재필은 미국인이었다. 그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는 골수 종미주의자였다. 그는 미·일의 조선 침략을 교묘히 책동하다가 추방령을 받게 되자 고종을 협박하여 거액을 뜯어내고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31년 만주사변 때까지 미국은 일본을 전폭 지지했다. 그러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동남아전쟁을 일으키자 대일 제제를 시작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상호 적국이 됐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조선의 침략국인 일본의 적국이 되었으므로 조선인의 대미 인식은 여전히 호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소련은 미국에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전승 대가로 일본의 홋카이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한반도의 38선 이북을 떼어 내어 소련에 안겼다. 이로부터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남측의 언론들은 친일세력을 비호하는 미국 편을 들었다. 그들은 희대의 반민족적 왜곡·조작 기사를 실어 민심을 선동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미국은 우리를 즉시 독립시키려 하는데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왜곡·조작 기사를 대대적으로 띄웠다. 이것은 오보가 아니었다. 이것은 한국 언론의 원죄였던 친일 전력 이상 가는 죄악이었다.
이후 미국은 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반역 군인들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자립을 지체시켰다. 만약 박정희, 전두환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경제 성장도 훨씬 안정되게 이루어져 지금 국민들의 생활도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체성과 자존심마저 미국에

2006년 미국은 한국전쟁 이래 60년 동안 쥐고 있던 전시작전권을 한국더러 가져가라고 했다. 전시작전권은 국가 주권의 핵심이므로 당연히 그 이전에 가져왔어야 한다. 전시작전권이 외세에 있는 한 비상시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가 없다.

아울러 주한미군의 목적은 대북 제지를 위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군대일 뿐이다. 우리는 그 군대에 땅을 내 주고 돈을 바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의 주체성과 자존심마저 미국에 다 내 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미국은 매년 주한미군 분담비 인상을 요구해 왔다. 그들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에 그리고 일본을 보호해 주는 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 미국은 ‘국제조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준이 됐다.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함으로써 야기되는 보이지 않는 피해들을 직시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로맨틱하거나 무모한 주장이 아니다. 현실적인 득실로도 미군 철수가 우리에게 유리하다.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보수 쪽에서도 미군 철수 주장이 많이 나올수록 대미 협상에서도 유리해진다는 점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외세 의존 세력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을 경우 우리 민족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을 끌어들인 신라는 대동강 이북을 내주고 당의 종속국처럼 전락했다. 임진왜란 때 명에 사대했던 자들 때문에 우리는 불과 40년 만에 또다시 병자호란을 맞아야 했다. 구한말 개화파들의 주장은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을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 친일 쿠데타 갑신정변의 조교 그룹이었던 서재필, 이승만의 무리는 여지없이 종미로 치달았다. 일제 때 이승만 같은 이들이 미국에 위임통치를 건의하고 다녀 미국에 얕잡힌 결과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초래됐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시작전권 없이 통일 없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참전했을 때 북측은 작전통제권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 했다.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조일연합군을 결성하면서 김일성에게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구했다. 김일성은 처음 거절하다가 끝내는 중국에 넘기게 된다. 그러자 중국은 곧 북한의 의사를 거스르고 서울을 금세 내주고는 38선 이북으로 후퇴해 버렸다. 이에 따라 1.4 후퇴로 밀렸던 미국은 다시 서울에 무혈 입성하게 됐다. 김일성은 중국에게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해 바로 관철시켰다.

구멍가게 하나를 운영하더라도 주인이 지키고 있어야 영업이 되는 법이다. 얼굴 마담이 아무리 능력 있다 한들 어디 주인만 하겠는가? 전시작전권 환수는 화급히 관철시켜야 한다. 불행히도 박근혜 정권은 또다시 전시작전권 환수 의무를 기피하고 있다. 그들에게 자주적 용기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동안 잘못되었던 것을 바로잡는 데에 어찌 부담이 따르지 않겠는가? 중국이건 미국이건 우리에게 외세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강대국들은 결정적일 때에 어김없이 약소국을 소외시키고 야합하는 법이다. 숱한 제국주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는가? 남북 화해 없이 평화 없고 전시작전권 없이 통일 없다. 

<진보정치 6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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